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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_ 순간순간들

용담의 태고정... 개요

by 나무 심고 책읽는...... 꿈은계속된다 202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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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위치한 '태고정(太古亭)'은 용담호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입니다. 다음은 태고정에 대한 상세 정보입니다.

태고정(太古亭) 개요

지정 문화재 :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02호 (1984년 4월 1일 지정)

 

현재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13-14

 

특징 : 조선시대의 정자로, 용담댐 건설로 인해 원래 자리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습니다. (1998년 이전)

건축 연도 및 연혁

최초 건립 : 조선 영조 28년(1752년)에 당시 용담현 현령(縣令)이었던 **홍석(洪錫)**이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락정(二樂亭)' 또는 '만송정(萬松亭)'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이락정(二樂亭) 유래 : '군자는 산과 물을 좋아한다(樂山樂水)'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만송정(萬松亭) 유래 :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름 변경 : 1666년(현종 7)에 용담 현령 홍석이 정자를 고쳐 지으면서 '태고정'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일부 자료에는 홍석이 처음 지은 시기를 1752년, 이름 변경 시기를 1666년으로 혼재하고 있으나, 영조 28년(1752)에 홍석이 지었다는 내용이 더 많이 확인됩니다. 아마도 이전의 '이락정'이나 '만송정' 터에 새로 지었거나 크게 중건하면서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난 : 1911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태고정을 국가에 헌납케 한 후 국고 수입을 올린다는 명목으로 공개 처분하려고 했습니다.

 

지역민의 보존 : 이때 수천리 송림마을의 임소환이라는 인물이 250원에 태고정을 매수하여 용담현의 공동 소유물로 기증함으로써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태고정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것입니다.

 

한국 전쟁 피해 : 6.25 전쟁 당시 운장산에 거점을 둔 공비들이 용담면으로 출몰하는 길목이어서 국군들이 잠복근무를 하였고, 정자 앞 벌판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용담댐 이전 : 1990년대 용담댐 건설 계획이 확정되면서, 태고정의 원래 위치가 수몰될 예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98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습니다.

건축 양식 및 특징

태고정은 그 건축이 섬세하면서도 구조가 정교하여 많은 풍류객들의 발길을 끌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자 앞에는 탁 트인 벌판이 있고, 밑으로는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며, 바위가 낭떠러지를 이루고 그 위의 서너 그루 노송이 사시사철 푸른 경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용담호의 물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물과 바람에 씻긴 바위와 소나무가 오밀조밀 어울려서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경관을 이루는 것이 일품이었다고 묘사됩니다.

연관된 자료 및 인물

현판: 정자에는 여러 명현달사(名賢達士)의 기개가 담긴 문장이 걸려 있습니다.

 

송준길(宋浚吉): '태고정(太古亭)'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송시열(宋時烈): '용담태고정기(龍潭太古亭記)'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들의 친필이 새겨진 나무판은 태고정의 역사적 가치를 더합니다.

 

기타: 정자 주변에는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역사와 관련된 공덕비, 열녀비, 고인돌 등의 비석들이 옮겨져 전시되어 있어, 태고정과 함께 용담의 과거를 엿볼 수 있습니다.

태고정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을 넘어, 용담 지역의 역사와 아픔,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해 자리를 옮겼지만, 그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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