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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제1권 제 1 부 한의 모닥불

나무 심고 책읽는...... 꿈은계속된다 2023. 4. 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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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제1  1 부 한의 모닥불 

5(2)  조계산 숯막

 

https://youtu.be/CKUCwBt-pZM

 

 

[염무칠, 염상진 부친] "이눔아, 사람 한시상 사는 것이 똑 갱물 흐르디끼 허는 겨.

큰 물줄기 따라 감시로

지 몫아치 딱 잡고 앞만 보고 애써 살아가자먼

시나브로 풀리게 돼 있는 겨.

무식헌 애비말이라고 귓등으로 듣지 말고

얼렁 맘 고쳐 묵어.

 

이 애비야 암시랑 않다만

처자석 생각혀서 맘 고쳐묵고 선상질이나 열심히 허란 말이다.

이눔아,

선상님 지체면 하늘에 별 딴  것이지 멀 더 바라는 겨.

 

애비 말 듣고 있는겨?"

 

아버지의 안타까와하는 마음이나 애석해하는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기대가 허물어 진 아버지의 낙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능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길이 잘못 잡힌 큰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를 거부하는 그의 마음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보다 우선했다.

 

선생님 지체면 하늘의 별을 딴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아버지의 만족스러운 성취욕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기도 했다.

종에서 선생으로...

이 신분의 변화는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천지개벽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룩한 것 임에랴.

 

염상진의 아버지 염무칠은

지주 최씨네 꼴 머슴살이를 벗어나

읍내의 숯가게에 취직한 것이 열여섯 살 때였다.

 

염무칠의 아버지는 낙안 벌의 토호 최씨네의 가복이었다.

국법에 의해 노비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다른 대부분의 노비들이 그렇듯

염무칠의 아버지도 경제적 독립을 꾀할 수가 없었다.

 

노비문서만 불살라졌을 뿐 생활조건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법에 의해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소작농으로서의 자립 경제를 도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땡전 한 닢 없는 신세로 어디로 거주를 옮길 것이며,

이미 소작을 부치고 사는 작인들도

농지가 줄어들까봐 급급하는 판에

소작인들 어디서 구할 것인가

천생 소작을 얻게 되는 경우는,

주인이 그 동안의 노고와 정리를 생각해서

소작 나가 있는 농토를 재조정해서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어느 만큼 마음을 쓰는 지주들은

다 그런 방법으로 거느렸던 가복들의 생활대책을 세워주었다.

그런데 염무칠의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그런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낙안과 고읍들의 그 넓고 비옥한 농토는 거의가 세 성씨의 소유였다.

 

유씨, 김씨, 최씨가 그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최씨네가 인심 사납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작인의 타작마당에 지주가 직접 나서는 것이 바로 최씨네였다. 

 

염무칠의 아버지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을 뿐

주인 앞에서 입 한번 뻥긋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최씨네를 박차고 나가서 새경받는 머슴살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슴살이 새경을 받아가지고 식솔들 목구멍을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리없이 최씨네에 눌러앉아 문서 없는 가복 노릇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소작농의 생활이 제아무리 팍팍하다 한들 어찌 가복의 신세에 비하랴.  비록 제 소유는 아닐망정 처자식 먹일 농사를 손수 짓는 것하고, 세끼 밥 근근히 얻어먹자고 온 식구가 종질을 하는 것하고 어찌 비교가 되랴. 염무칠의 아버지는 세상 살 맛을 잃고 원기를 뽑아내는 것 같은 짙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염무칠 부친] "

날로 달로 개명 혀가는 시상이니께

농새만 짓고 한평생 살라고 허덜 말어.

이 애비가 산 시상허고 니가 살 시상허고는 생판 달블 것잉께."

 

눈을 감기 전날 염무칠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염무칠이 숯가게 배달원으로 취직을 한 것은 아버지의 그 말을 좇아서 였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염무칠이 숯 행상을 나선 것은 배달원 생활 6년 만이었다.

나이가 들기고 해서였지만

그보다도 그 동안 읍내 바람에다가 장사물을 먹은 탓에

지게 목발을 두들기던 옛날의 염무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맹무식이었던 그는 계산법도 완전히 익히고 있었고,

서툴기는 했지만 주판알을 굴릴 줄도 알았다.

숯을 많이 쓰는 일본인들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어지간한 일본말은 다 알아들었고, 쉬운 말은 척척 해낼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염무칠의 사람됨을 달라지게 한 것은

장사문리가 트이면서 함께 눈뜨게 된 이재의 방법이었다.

 

외상은 할 수 있는 대로 하되

절대로 주지는 마라, 로 시작되는 몇 가지 조항은

염무칠을 차돌멩이처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세상을 대하는 데 밤송이 같은 경계의 촉수를 갖추게 했다.

 일전을 보고 물 밑으로 50리를 기어라.

하루에 10전을 벌기로 작정했는데 9전밖에 못 벌었으면 굶고,

11전을 벌었으면 1전 어치만 먹어라

한번 수중에 든 돈은 이문을 물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내놓지 말아라.

이익이 남는 장사를 하는데 손님이 열 번 밟으면 백번 밟히는 시늉을 해라. 

돈을 빌려주지 말고 차라리 마누라를 빌려줘라.

 

싸릿대를 엮어 만든 숯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행상을 다니는 염무칠의 가슴에는

그런 말들이 비석의 비문처럼 새겨져 있었다.

 

염무칠이 행상으로 나선 것은 가게를 세 낼 만한 돈이 없으니까

당연한 것이었지만 매물인 숯을 구하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한푼이라도 더 싸게 팔면서 이윤을 높이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숯가마에서 직접 물건을 떼오는 것이었다.

 

염무칠은 망설일 것 없이 오금재를 넘어 조계산 숯가마를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돈을 낸다고 숯을 아무한테나 파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판매조직에 의해서 중간유출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70 리 산길을 걸어온 것이 억울해서 염무칠은 빈 지게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숯장이를 붙들고

구구한 사정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애걸하다시피 했다.

그런 염무칠의 마음에는,

제아무리 엄하게 단속을 한다 한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숯 서너 가마니 뒤로 못 빼내랴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숯장이]  "와따 참말로, 젊은 사람이  징상시럽게도 찔기네잉.

갱엿만 묵고 살았능가

칡뿌랑구만 묵고 살았능가, 워찌 그리 찔기당가?"

 

숯장이는 숯검정이 범벅이된 얼굴로

질렸다는 듯 염소웃음을  웃었다.

 

[염무칠]"죽지 못허고 살아야 헐  찔긴 목심 땀세 요리 찔겨졌는갑구만이라."

 

[숯장이] "허어, 말도 청산유수시웨.

워쨌그나

내 동상 겉은 젊은 사람이 살아보겄다고 그래싼께 살짝 혀주는 소린디,

나는 불이나 때고 불구녕이나 막고 험시로

아무 심도 웂는 사람이고,

고 찔긴 맘으로 저 아래 선암사 주지시님을 찾아가 보드라고.

 주지 시님 맘에 들었다 허먼

그까징거 숯 서너 가마니 얻기는 손바닥 뒤집기여.

엔돈가 벤똔가 허는 일본놈도 주지 시님 헌테는 괭이 앞에 생쥐 새끼니께."

 

그래서 선걸음으로 주지스님을 찾아갔고,

대웅전 앞뜰에서 주지스님을 맞닥뜨리자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리며 넙죽 큰절부터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온몸의 피가 말라붙는 마음으로 찾아온 경위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염무칠의 양쪽 입가에는

침 찌꺼기가 희게 말라붙어 있었다.

 

[주지스님] "으음..."

 

이야기를 다듣고 난 주지스님은

얼굴을 약간 내리고 눈은 올려 뜬 엄한 모습으로

염무칠을 쳐다보며 뜻모를 으음 소리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스님의 그 눈길이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만 같아

 염무칠은 꼼짝을 못하고 서 있었다.

 

[주지스님] "그러하다면, 오늘만 달라는  것잉가

아니면 앞으로도 쭈욱 달라는 것잉가?"

 

마침내 스님이 물었다.

 

[염무칠]"살아갈 방도가 따로 웂는 몸인디

주지스님께서 질을 잠 티워주십소사 허능구만요."

 

[주지스님] "하면, 매번

지게로  숯가마니를 벌교 읍내꺼지 져 날르겄다는 말인가?"

 

주지스님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으며 눈을 반쯤 내리감았다.

 

[염무칠] "시님,

주지시님, 질만 티워주심사

고것이야 지 심으로 허는 일인디

워찌 못허겠능가요.

질만, 질만 티워주시씨요."

 

염무칠은 곧 장삼자락을 붙들 것처럼 몸이 달아 있었다.

 

[주지스님] "이것도 다 부처님의 인연일시,

내 엔도한테 양해를 구할 것이니 어디 해보도록 하게나."

 

염무칠은 한 행보에 숯 세 가마니씩을 지고

오금재 가파른 산길을 넘기 시작했다.

지스님의 도움으로 숯을 생산가에 받은 수 있었으므로 이문이 컸다.

그러나 왕복 140리의 도보운반으로 물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목돈을 만지기는 어려웠다.

 

염무칠은 지치지 않았다.

1년, 2년... 장가를 들고 자식을 낳고,

염무칠은 20년이 넘게 오금재를 넘나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들 둘, 딸 셋을 낳아 길렀다.

그리고 선암사 주지스님이 세상을 떠났다.

다비가 끝나고 사리를 거둘 때까지

오로지 속인 옷을 입고 섧게 운 것은 염무칠이 뿐이었다.

 

숯장사는 아무래도 한겨울을 대목으로 해서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미처 반년 장사가 못 되었다.

래서 염무칠은 여름 한 철은 참나무를 쳐내는 산판에서 품을 팔았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부터 숯을 구워내기 위해 벌이는 산판이었다.

 

식비를 제한 품삯이 숯장사보다 나을 리가 없었지만

일곱 식구 호구를 위해서는 잠시 인들 손을 쉴 처지가 아니었다.

 

호구만이 아니라 사내자식들은 가르쳐야 했으므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 하지 않을 형편이었다.

 

사실 20년 넘게 숯장사를 하면서 염무칠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장사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오금재를 넘다가

눈길을 헛디뎌 지게를 진 채로 계곡으로 굴러

눈덩이에 쳐박히기가 몇 번이었고,

폭설을 만나 길을 잃어버려 얼어죽을 뻔도 했고,

길을 질러가려고 저수지 얼음판 위를 걷다가

한가운데서 얼음이 뿌지직 뿌지직 갈라지며

내려앉는 바람에 물귀신이 될 뻔도 했다. 

 

쉬운 말대로라면 그때도 숯을 세 가마니나 진 지게를

후딱 벗어던졌으면 물에 빠지는 것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그 숯 값이 얼마며,

그 먼 길을 얼마나 애쓰고 지고 왔는데

벗어던진단 말인가.

물에 빠질 때 빠지고,

죽을 때 죽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곰 같은 염서방'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막 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욱이 큰아들 상진이를

사범학교에 진학시키고부터는

그를 대하는 읍내 사람들의 태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염무칠의 이름은 읍장이나 경찰서장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큰아들 상진이가 자랑스러운 것만큼

염무칠에게는 두통거리가 있었다. 

작은아들 상구로하여 속을 썩었다.

큰아들이 혀에 착착 감기는 조청이라면

작은 아들은 목구멍에 걸린 가시였다.

 

작은아들은 소학교를 졸업시키자마자 옆구리에 끼고

장사나 착실히 가르칠 심산이었다.

그런데 미꾸라지처럼 쏙쏙

손 밖으로 빠져나가기만 할 뿐 영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물론 무작스럽게 패기도 여러 차례 했지만

한번 비뚤어진 심성은 바로잡아지지가 않았다.

 

작은아들이 그렇게 엇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었는데도

염무칠은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봉건사회의 세습제와

유교 전통의 불문율인 장자제일주의 인습을

염무칠은 미련하게도 철저하게 지켰던 것이다.

 

두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염무칠은 장남과 차남의 위치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모든 것이 장남 본위, 장남 우선이었다.

차남은 상대적으로 무시 묵살되었다.

 

 둘이 다투어도 작은아들이 쥐어박혔고,

명절에 쑥떡 하나라도 큰아들이 더 먹었고,

가뭄에 콩 나듯 닭을 잡으면 똥집은 으레 장남 차지였고,

그러면서도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다 작은아들에게 돌아갔다.

 

상구는 형 상진이가

그 쫄깃쫄깃한 닭 똥집을 소금에 찍어

야금야금 먹는 것을

손가락을 물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끝내,

저 문딩이 겉은 새끼가 팍 디져뿌렀으먼 속이 씨언 허겄다,

속으로 욕을 퍼대고는 했다.

 

차남 상구는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부모 앞에서만 서면 목을 꼬아박고

두 팔을 치켜들며 옆걸음을 치는

주눅든 방어 자세를 취하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형이 줄곧 일등을 하는 데 비해 동생의 성적은 말이 아니었다.

어떤 일의 기억은 형보다 더 초롱초롱한데도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게 된 다음부터였다.

 

 역전이나 차부를 얼쩡거리면서 왈패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생겼다.

이러다간 새끼 하나 버리겠다 싶어

더 늦기전에 길을 잡기로 작심한 염무칠은

작은아들을 붙들어 멱살을 틀어쥐고 집으로 끌고 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매타작을 놓았다.

다시는 한 그러겠다는 다짐을 받고 풀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차례 더 매를 들었지만 그럴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염무칠은 작은아들을 버린 자식 취급하기로 해버렸다. 

그렇게 되자 큰아들에게 마음이 더욱 쏠려갔다.

사범학교를 나와 떠억 하니 소학교 '선상님'이 되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벌떡거려 염무칠은 숨을 쉬기가 거북할 지경이었다.

'선상님' 아버지가 되어 대접도 받고,

그 지긋지긋한 고생에서도 벗어나고,

 염무칠의 달디단 꿈은 끝이 없이 펼쳐져 나갔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두 가지에 집착해 있었다.

 

사람으로서 그 신분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과,

장사를 통해서 갖게 된 돈의 효능에 대한 신뢰였다.

그것을 큰아들이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염무칠이 세상을 떠난 것은       

큰 아들이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 다음해였다.

그는 눈 가장자리에 지저분하게 눈꼽이 끼어

일년 내내 비실비실하더니 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두 아들놈이

불쌍한 염 서방을 잡아먹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큰아들은 사범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나오고도

선생을 마다하고 농사일을 시작했고,

완전히 주먹패가 되어버린 작은아들은

철교아래 선창에서 칼부림을 해 일본 선원을 찔러죽이고 도망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염무칠] "이눔아,이눔아,

니가 행여 그리 못쓰게 변, 변 헐 줄은... "

염무칠이 큰아들의 손목을 틀어잡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호산댁, 염상진 모친] "이눔아, 니가 아부지 가심에

못을 쳐도 대못을 친겨.

 아부지가 워째서 요리 일찍 죽어뿐지 니는 알겄제?

인자라도 안늦었응께

아부지 한을 풀어줄라먼 싸게 선상질을 혀.

그라면 아부지도 저승길을 편히 가실 껴.

 

이 에미 말 알아듣겄냐?" 

 

호산댁은 큰아들을 마구 흔들며 울부짖듯 했다.

염상진이 자식 된 도리를 할 수 있었던 일은

장가를 가는 것 까지였다.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사상문제로 의심받아 발령이 보류된 상태였다.

의무복무가 저절로 없어져 버린 그 조처를

그는 오히려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농사를 짓기로 결심을 했지만

염상진은 손바닥만한 땅뙈기도 없는 형편이었다.

김범우의 아버지 김사용을 찾아가기로 했다.

 

염상진은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을 주입하는 선생노릇은

차마 할 수 없어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는 요지의 말을

김사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연하게 해나갔다.

 

[염상진]  "저에게 농사지을 땅을 좀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농사를 짓고 있을 전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땅을 얻고자 하면

다른 소작인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간을 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빌려주시라는 겁니다."  

 

김사용은 단정히 꿇어앉아 말하고 있는 염상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이 그지없이 따뜻했고,

입가에는 조용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김사용]   "그래,

자네가 교직을 갖지 않겠다는 그 뜻은

참으로 가상하네만,

가 듣기로는  자네 춘부장 어른께서

자네가 선생이 될 날을 고대하심서 많은 고생을 허신 걸로 아는데." 

 

김사용은 염상진의 아버지를 최대 존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염상진]  "예에,

아버지는 물론 서운해허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입장이고,

제가 선생이 되어 일본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친일이고 매국이 됩니다." 

 

[김사용] "오호, 자네가  어느새..."

김사용은 놀라워하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작은아들 범우와 소학교적부터 절친하게 지내오고 있고,

특히 독립운동에 몸바치고 있는

장남 범준이를 흠모하는

기특한 소년으로만 알고있었던 염상진이가

어느새 주견이 반듯한 성인으로 성장해 있음은

자기 자식의 변모를 보는 듯 흐뭇하고 대견했다.

 

[김사용] "오호, 자네가  어느새

김사용이 침통한 표정으로 방바닥을 내려다본 채

 혼잣말처럼 낮게 말하고 있었다.

일찍이 그 총명과 사람됨을 눈여겨보아온 터이지만

역시 염상진은 예사 젊은이가 아니라 싶었던 것이다.

 

[김사용]   "자네의 그런 큰 결단 앞에

내 어찌 땅뙈기 내놓기를 주저하겄는가.

 

자네가  필요한 만큼,

개간을 헐 수 있는 만큼 쓰도록 해줌세."

 

큰아들 범준이가

만주 벌판 그 어딘가에서 하고 있는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사용은 흔쾌하게 말했다.

 

[염상진]  "어르신, 고맙습니다."

  염상진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김사용]  "외레 내가 고마우네.

농담으로 묻는 말인디,

그래, 땅을 빌어 쓰면 사용료는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낼 심산인가?"

 

김사용이, 어디 보자, 하는 애정이 넘친 표정으로

염상진을 쓰다듬듯 바라보고 있었다.

 

[염상진]  "제가 어르신의 소작인이 되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사용료 같은 것은 없이

일정기간 동안 빌어 쓴 다음 반환하기로 하겠습니다.

 

반환 받으실 때는 박토가 옥토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염상진은 전혀 농담하는 기색이 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김사용]  "허허허허... 박토가 옥토로 변했다.

내가 남는 장사를 허게 생겼구만.

그래, 그 생각은 미리 헌 것인가,

 말을 듣고 당장 생각 헌 것인가."

 

[염상진]  "땅을 빌러 오면서 그냥 와서야 되겠습니까?"

 

 [김사용]  "허어, 자네는 역시 앞뒤가 철저한 사람이네그려.

그  조건에 내 동의함세." 

 

김사용은 눈가에 잔주름을 잔뜩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김사용]  "가세, 내 땅을 보여줌세."

 

김사용이 장죽을 옆으로 치우며 일어설 자세를 취했다.

 

[염상진]  "아니 어르신, 어쩌시려고..."

 

염상진은 당황한 나머지 두 팔을 벌려 제지하는 몸짓을 지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몸짓이

어른 앞에서 취할 바가 못 됨을

순간적으로 깨닫고는 재빨리 팔을 수습해 들였다.

 

[김사용]  "어찌하긴,

말이 난 김에 쓸 만한 땅을 골라보자는 게지.

자네 맘    한시가 급 헐   것인디 서둘러야제."

 

김사용은 무릎을 짚고 더디게 일어섰다. 

염상진은

다급하게 따라 일어서며

어떤 뜨거운 기운이 빗줄기 내리듯

가슴 전체를 덥혀오는 걸 느꼈다.

 

[염상진]  "어르신,

지체하지 않으시고 땅 장만해주시는 것만도... 

어르신,

어찌 어르신께선 손수 걸음까지 하시려고..."

 

  염상진은 출렁거리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말까지 더듬거렸다.

 

[김사용]  "암시랑 않네. 어여 앞서게."

 

김사용은 대견해하는 따스한 눈길을 염상진에게 보내며

두루마기의 긴 고름을 유연한 손놀림으로 매고 있었다.

 

[염상진]  "어르신,

머슴한테 일러 보내도 될 일입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걸음 하시면

제 사람 노릇이..."

 

염상진은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황송하고, 송구스럽고..

 

자신이 김사용을 '어르신'이라 호칭하는 것은

봉건적 지체의 높 낮음을 지켜서가 결코 아니었다.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

우러르는 선배와

신뢰하는 친구의 부친으로서

더 이상의 존칭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보다 더 높은 호칭이 있었더라면

염상진은 서슴없이 그것을 택했을 것이다.

[김사용]  "괘념치 말게.

자네는 다 받아놓은 밥상을 마다 하고 시작 허는 일인데

내 한 행보 걸음이 머 그리 대단 헌 것인가.

가세,~

 원족 삼아 자네허고 함께 걷는 맛도 별미일 것이니." 

 

김사용 어른이 자신에게 쏟고 있는 애정이

얼마나 짙은 것인지를 염상진은 여실하게 느꼈다.

그분의 손수 걸음을 하려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한 격려의 뜻임을

염상진은 너무나 잘 알았다.

 

제석산의 북쪽 줄기인 거선봉 아래까지

 10리가 넘는 길을 김사용 어른은 묵묵히 걸었다.

 

염상진은 두어 발짝 뒤쳐져 걸으며

여러 갈피의 생각들을 질정없이 떠올렸다가 버리고는 했다.

 

그 생각들 중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김범준의 모습이었다.

 

털모자에 털외투를 입고 매서운 눈초리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던 사람.

그 눈초리뿐만이 아니라

굳게 다물린 입이 주던 위압감.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본 사진 속의 김범준은

염상진의 의식 속에서 항시 숨쉬며 살아 있었다.

 

염상진이 소학교 졸업반이던 한겨울이었다.

밤 사이에 읍내는 추위보다 더한 살기로 뒤덮였다.

순사들이 눈을 희번덕이고 숨을 몰아쉬며

동네마다 들쑤시고 다니는 소란이 벌어졌다.

 

독립운동을 하는 김범준이

또 한 사람과 함께 나타났다는 쉬쉬하는 소문이

이미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김사용이 경찰서로 붙들려갔고,

김씨 문중 사람들이 떼지어 경찰서로 몰려갔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김범준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김씨 문중 사람들은

김사용의 몸에 손만 대면 끝장을 보고 말겠다며

경찰서를 에워싸고 서슬이 시퍼랬다.

 

염상진은 작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경찰서 주변을 맴돌기도 했고,

창백하게 풀기 죽은 범우를 찾아가기도 했다.

 

[김범우] "우리 범준이 성님은

지리산 호랭이 맨치로 날래고 싸나운께

폴세 지리산 천왕봉 넘고 금강산 지내

백두산꺼정 갔을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다소 화색이 돌아온 범우가 힘을 꽁꽁 쓰며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과는 달리

먼 하늘 끝을 보고 있는 범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 괴어 있었다. 

그 눈물을 보자 상진이도 그만 목이 메었다.

 

[염상진] "그럴껴,

필경 그럴껴.

느그 성님은 폴세 백두산도 넘어 만주꺼정 갔을 껴.

하먼, 독립군인디."

상진이는 그분의 무사를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목을 삼켜가며 힘주어 말했다.

 

[염상진] "근디, 니는 느그 성님을 만내봤냐?"

 

상진이는 여태껏 감추어왔던 말을 속삭이듯 낮게 물었다

 

[김범우] . "아녀. 아침에 일어나봉께

엄니가 운티가 나고..."

 

범우는 목이 메는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나도 싸게 커서 느그 성님 겉은 사람이 돼야 쓰겄다,

상진이는 이 말을 가슴속에다 묻고 말았다. 

상진이가 두 학년이나 차이가 나는 범우와 가까이 기내게 된 것은

바로 '김범준'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그 사람,

그건 꼭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 형을 가진 범우가 너무나 부럽고,

범우와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다.

그런데, 먼먼 땅 만주에만 있을 줄 알았던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다.

 

상진은 그분이 무사하기를 밤마다 얼마나 간절히 빌었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장독대 삼신할메한테 비는 것을 흉내내어 간절하게 빌다가

꿈은 꼭 그분이 잡히는 것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그분이 잡히지 않는 꿈을 꾸려고 용을 썼지만 허사였다.

꿈은 생시와는 반대라니까,

어른들의 말을 상기하며 안타까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사용은 풀려나기는커녕

순천경찰서로 넘겨진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과 함께 읍내에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너 너덧 명씩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다음날이 저물기 전에 읍내에는 새로운 소문이 퍼져나갔다.

 

김사용을 순천으로 넘기기만 하면, 자동차로 가면 소화다리를 끊어버릴 것이고,

기차로 가면 철교를 끊을 것이라고 했다.

 

벌교 사람을 타지에 넘기기만 하면

'벌교 주먹' 본때를 보여 일본 놈 씨를 말리고 말 것이니,

그나마 서로 다치지 않고 살려면

김사용을 곱게 내 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틀 후에 선 5일장에서 그 소문은 입증되었다.

음력설 밑 대목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터는 아침부터 파장 꼴이 되고 말았다.

순천에서 넘어오는 진트재,

보성에서 넘어오는 석거리재,

고흥에서 넘어오는 뱀골재를 막아

장사꾼들의 발을 묶은데다가,

읍민들이 발길을 끊었던 것이다.

 

썰렁한 장터에 감돌고 있는 냉기는

냉기가 아니라 벌교 사람들이 내보이는 무언의 살기였다.

그건 김씨 문중의 사람들의 은밀한 움직임이 작용한 탓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갯가를 끼고 사는 벌교 사람들 특유의

독기의 표현이라고 해야 옳았다.

 

김사용은 이틀을 더 경찰서에 묶여 있다가 결국 풀려났다. 

염상진은 아슴하게 뻗어나간 방죽끝을 향하여

와와 목청껏 소리치며 달리고 싶을 만큼 기쁘고 눈물겨웠다.

 

 설날 아침햇살이 퍼지기를 기다려 세배를 하러 갔다. 

상진이 세배를 마치고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자,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김사용이 마고자 섶을 들춰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김사용]  "우리 상진이 금년에도 건강허고 공부 잘해야 쓴다."

김사용이 너그럽게 말하며 세배돈을 내밀었다.

 

[염상진] "저어...

돈보다 지 헌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디요."

상진은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주눅든 것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김사용] "소원이 있다고?"

김사용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묻고는,

 

[김사용]"그래 상진이 소원이 무얼꼬?  

새해 소원인데 내 심으로 헐 수 있는 것이면 들어줄 것이니

어여 말을 해보거라."

 

어려워하는 어린것의 마음을 헤아리며 선선하게 말했다.

 

[염상진] "저어... 범준이 성님, 아니... "

상진이는 소스라치게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아무리 친구 범우의 형님이지만

자기도 '범준이 성님'이라 불러서는 안될 것  같은

두려운 깨달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김사용은 직감적으로 어린것의 그런 감정 변화를 눈치챘다.

참 기특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김사용] "암시랑 않다, 

니는 범우 친구니께 

니 헌테도 성님이다.

 

그래,

범준이 성님이?"

 

김사용은 말문을 틔워주듯 다음 말을 재촉했다.

 

[염상진] "사진으로라도 얼굴을  똑 한번 보고 잡은 것이 소원인디요."

 

의외의 말이었다.

어린 것이 이제 고개를 똑바로 들어 김사용을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 어린아이답지 않은 결의가 서려 있음을 김사용은 보았다.

 건 큰아들에 대한 소년의 티없는 존경심이기도 했다.

 

[김사용]  "요 돈 먼 첨 챙겨 넣거라. 니 소원 풀어줄 테니까."

 

코허리가 매콤해지는 걸 느끼며

김사용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사용이 안방으로 건너갔다.

그때까지 눈을 말똥거리며 조용히 앉아 있던 범우가 입을 열었다.

 

[김범우] "성! 뜽금웂이 왜 아부지헌테

고런 소리 먼첨 허는겨."

 

그 퉁명스러운 목소리에는 

자기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서려 있었다.

 

[염상진]"니 심으로 결정할 일이 아닌께로." 

 

상진이는 당연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런 상진이는 범우에게로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범우] "치이,

성은 은제고

지 맘대로 허는 게 질 못써."

 

범우는 볼멘소리를 냈다.

상진이는 아무 대꾸가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 사진을 감추듯

손바닥 안으로 감싸잡은 김사용이 들어왔다.

상진이는 반사적으로 허리가 쭉 곧아지는 긴장을 느꼈다.

 

[김사용] "여깄다, 어여 보거라."

김사용이 선 채 사진을 내밀었고,

상반신 사진을 받아든 상진이는 흡 숨길이 멎는 것을 느꼈다.

 

사진 속의 매서운 눈초리가 일시에

그를 위압해왔던 것이다.

 

[김사용]   "경사가 지긴 했어도

이만 허 먼 밭을 일굴 순 있을 것이니

자네 맘에 드는 쪽으로 개간을 해서 쓰도록 허게."

 

김사용은 이미 밭으로 쓰여지고 있는

그 위쪽의 산등성이를 손가락 끝으로 넓게 가리켰다.

 

 경사라고 해야10도가 넘을 것 같지 않았고,

나무라고 해야 다복솔이 듬성듬성 박힌 정도였다.

 

뗏장을 떼어내고 나면

그대로 밭 구실을 해낸 수 있을 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건 김사용 어른의 배려임을 염상진은 직감했다.

 

[염상진]  "어르신,

이 땅은 몇 명만 놉을 사면 금세 농토화시킬 수 있는 땅 아닙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이런 과분한 땅이 아닙니다."

 

그 분의 배려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것이었지만

염상진은 진정 그분에게 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원했던 땅은

경사가 심한 곳에 있는 돌 투성이의 그야말로 박토였다.

 

버린다 해도 별로 아까울 것이 없을 정도의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다가 반환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반적 제의를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김사용]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밝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니 어련허겠는가.

 

맘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 허허허허..." 

 

염상진은 섬뜩함을 느꼈다.

김사용 어른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분이 가진 땅 중에서 이 부분이 제일 나쁜 것일 리가 없었다.

그분의 웃음 소리가 묘한 바람으로 변해

자신의 가슴을 휩싸는 것을 염상진은 느꼈다.

 웃음이 그렇게 자조적이고 허탈할 수가 없었다. 

 

눈 밝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니 어련 허겄는가,  하는 말과 웃음소리가

미묘하게 엉키고  있었다.

 

염상진은 문득,

현재 이분이 소유한 재산이 얼마나 될까…., 하는

 회의스런 의문을 떠올렸다.

 

전체 재산은 알 수 없지만

고읍들의 상답이 그 동안 수차에 걸쳐 최씨네에게로 팔아 넘겨졌던 것이다.

그때마다 읍내에는 조심스런 소문이 나돌았다.

또 일본에 회사를 했다는 것이었고,

큰아들로 김사용은 끝내 집안을 망치고 말 것이라는 거였다.

 

[김사용]  "자넨, 앞으로 신중해야 허네.

 젊은 뜻 세우는 거야 장하고 고마운 일이네만,

급허다고 뜨거운 물 식히지 않고 마실 수는 없는 법이니까.

 세상이 날로 악허고 독허게 변해가고 있네."

 

김사용 어른은

드넓게 펼쳐져나간 고읍 들녘을 바라본 채

뒷짐을 지고 서서 나직하고 느린 어조로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바둑판 들여다보듯 환히 알고   있는 그 분의 말에

 염상진은 결코 놀라지 않았다.

자신이 땅을 요구했을 때

이미 그 분은 그 의도를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었다.

그 분의 뒷모습에서 천근 무게를 느꼈다.

 

[염상진]  "명심하겠습니다."

염상진은 겨우 이 말만을 했을 뿐이다.

 

 

통학차가 도착할 저녁 무렵에 염상진은 역으로 나갔다.

김범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범우]  "또 상의 한마디 없이 결정했는가?"

염상진의 결론만 추린 이야기를 듣고 김범우의 첫마디였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는 조용하게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염상진]  "의논해도 같은 결론일 바에야 

한시라도 시간을 벌어야지."

 

 염상진이  김범우의 어깨를 살짝 치며 씩 웃었다.

 

[김범우]  "언제라고 형 말 틀린 데 있나?

어쨌거나 형의 그 추진력에는 기가 질려. 

신속하고, 끈질기고...

머 당해낼 도리가 있어야 말이지."

 

[염상진]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고는 허황한 공상에 지나지 않아.

공상처럼 무용지물도 없지.

특히 현재 우리들이 처한 상황 아래서는 말여."

 

[김범우]  "형의 논리는 맞지.

허나 앞으로 몸조심해야 할 거네.

벌써부터 순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까."

 

[염상진]  "각오하고 있어. 드디어 막은 올랐으니께!"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우정 이상의 이념 세계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탐독했던 것이고,

거기서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의 그런 뜻 모아짐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던

유행적 독서 성향과는 달리 구체적인 사표가 있었다.

김범준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서적을 접하는 데 있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인식의 차이가 내재해 있었다.

 

김범우는 지주의 아들로서

 소작농들의 헐벗고 굶주리는 비참한 생활에 대하여

자책과 죄의식을 느끼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상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면

필연적으로 봉건 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의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상진에게는

그런 자책과 죄의식의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고,

이상세계의 빠른 실현을 위해

지주계급이나 경제적 지배세력을 타도할 수있는

무산자들의 힘의 조직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김범우가 인간생존의 양심을 밝히는 불씨를 얻었다고 한다면,

염상진은 인간생존의 방법을 뒤바꾸는 무기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염상진이 그들 책을 통해서 받은 충격은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었고,

새로운 빛의 출현이었고,

새로운 길의 열림이었다.

 

가난으로 기죽어 식어 있는 피를 뜨겁게 끓게 했고,

비천으로 주눅들어 움츠러든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가난도 비천도 함께 면해보자고

사범학교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어줍잖고 가소로운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마르크스의 이상 사회 건설을 위해

볼셰비키 혁명을 실천함에 있어서

그까짓 소학교 선생자리는 헌 짚신짝 버리기나 마찬가지였다.

 

 염상진이 김범우를 동지일 수 없다고 판단 내린 것은

범우가 학병에서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김범우도 똑같은 시기에

염상진의 극렬적 좌경을 체념해버렸다.

 

염상진은 한때 김범우를 완전히 적으로 속단할 뻔했다.

김범우가 교직에 몸담으면서부터

좌익 학생조직을 와해시키는 행동을 시작해서였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 올리고 있는 불길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적 행위였다.

그건 재고의 여지가 없는 정면도전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 아래

 감상적인 옛 우정이란

한갓 두엄더미 옆에 구르는 똥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염상진이 김범우를 혁명의 적으로 단정하려 할 즈음에

김범우의 실체가 드러났다. 

 

백범 김구 식의 민족주의 통일노선을

김범우는 실현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범우는 경찰서고 군정청이고 드나들며

좌익계 학생들을 석방시키기에 바쁘고,

한편으로는 좌익학생들을 설득시키느라고 진땀을 빼는 것이었다.

염상진은 그런 김범우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가 했던 '민족의 발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꽤는 그 의미가 넓고 깊은 말이라 싶었다.

 

민족..

그건 모태와 같은 것이고,

음성적으로도 어머니를 부를 때처럼 정겨운 슬픔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소중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일제하에서나 생기가 도는 말인 것이다.

이미 반도 땅은 해방을 맞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바나 행동하는 것은

그 나름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의 동지도 아니었고 적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동지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었지만

그건 또 다른 '주의'는 될 수 없었다. 

 

이상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대치해 있는 양대 세력 사이에서

제3의 세력이 될 수 있는 힘의 조직화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환상이고 몽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한계였다.

그의 핏속에 용해되어 있는 부르조아 근성은

환상가는 만들어낼 수 있어도

혁명가는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염상진은

김범우를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혼자 '민족의 발견'이나 많이 하게 방치해두면 이쪽에도 다소의 이익을 주는 셈이었다.

읍내를 점령하기 전날 밤

굳이 김범우를 찾아가 피신하라고 일렀던 것도

그의 '민족 발견'을 위한 행위 때문이었다.

그가 얌전하게 선생 노릇만 했더라도

그런 사전조치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분명 정치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움직여 자기 존재를 드러냈고,

 그의 행위는 자칫 오해받은 위험성을 띠고 있었다.

 

그가 무턱대고 순천바닥에 나갔다가

누군가 그를 오해하고 있던 혁명군에게 체포되면

 영락없이 곤욕을 치를   것이었다.

 

그리고 벌교 바닥에서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가 체포되어 자신의 앞에 끌려오는 꼴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더구나 체포해온 부하에게

그의 무죄를 해명해야 하는 옹색스런 입장에 처하고 싶지도 않았다.

미리 피신시키는 것이 우정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김범우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김사용 어른을

인민재판의 단상에 세웠던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먼저, 지주인 그분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떳떳한 명분을 세우고자 함이었고,

다음은, 다른 지주들을 처단하는데 있어서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단상에 세워진 김사용 어른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분은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찡그리듯 눈을 꼭 감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단상을 내려올 때 머슴이 부축을 하긴 했지만

그분은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염상진은 그 모습에서 강한 거부의 뜻을 읽어냈다.

그런데 그분의 주름 골이 심한 창백한 얼굴 위에

 햇볕이 반사되는 느낌을 받았다.

언뜻 이상한 생각이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분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꼭 감은 눈과 눈물과...

 

염상진은 한 가닥 전류가

찌르르 가슴을 관통하는 아픔을 느꼈다.

 염상진은 얼른 외면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의 눈물이 생명을 건진 안도의 감루가 아니라는 사실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염상진은 어두워진 다음에야 겨우 짬을 내어

그분을 찾아갔다.

하루종일 신경이 쓰였고,

그대로 밤을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사용]  "자네가 어인 일로..."

김사용은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

염상진은 그토록 냉담한    그분의 얼굴을 여태껏 본 일이 없었다.

 

[염상진]  "어르신, 저를 용서하십시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김사용]"..."

 

김사용은 단상에 섰을 때처럼

양쪽 눈꼬리에 주름살이 겹치도록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염상진]  "제 입장을 이해해주십시오."

 

[김사용]  "..."

 

김사용은 숨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밤이 다 새어도 그 눈이 뜨이거나

그 입이 열릴것 같지 않았다.

 

염상진은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은 김사용 어른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염상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사용]  "..."

 

염상진은 방문을 닫고 마루로 나서며,

찾아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오금재를 넘으면서부터

김사용 어른과 김범우의 생각이

다른 많은 생각들을 밀치고 염상진을 괴롭히고는 했다.

그건 패배감으로 직결되는 괴로움이었다.

또 그 패배감은 모멸감과 연결되었다.

그들의 소리없이 비웃는 모습이

금방 눈 앞에 어릿거리는 것만 같았다.

 

[하대치]  "위원장 동무, 아침진지 드시씨요."

 

염상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양쪽 손에 그릇을 든 하대치가 씽긋이 웃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태평하고 건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염상진은 자신의 몸에도 탄력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래,

저게 바로 혁명전사의 모습이다. 

불필요한 생각을 곱씹는 건 혁명의지를 약화시킬 뿐이다.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있을 뿐이다.

 

염상진은 심호흡을 하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염상진]  "벌써 밥이 다 됐소?"

 

[하대치] "야아,

헌디 찬이 웂어서 워쩔께라?"

 

그릇을 돗자리 위에 놓으며

하대치는 어쩔 수 있느냐는 듯

콧등을 찡그려 붙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염상진]  "이만하면 훌륭하오."

 

 염상진은 밥 한 사발,

김치 한 보시기를 내려다보고 나서

하대치에게 진득한 웃음을 보냈다.

 

[염상진]  "하 동무도 같이 묵읍시다."

 

[하대치]  "아니어라,

지는 동지들허고 함께 묵을랑마요.

밥 식는디 싸게 드시씨요." 

 

하대치는

어찌 감히 맞바라보고 밥을 먹겠느냐는 듯

팔까지 저으며 황급히 일어섰다.

 

[염상진] "하 동무,

아침 먹고 나면 보초를 빼고

다른 대원들은 잠을 재우시오.

그 다음 하 동무는 나와 얘기합시다."

 

[하대치]  "야아, 그리 허겠구만이라."

 

염상진은 한 사발의 밥과

한 보시기의 김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줄일 수 없이 간소한 한 끼 식사였다.

 

그러나 겉보리 죽이나

배추시래기죽에 비하면 성찬이었다.

어린 날로부터 지금까지

보릿고개라는 춘궁기는 없어질 줄 몰랐고,

소작농들이나 품팔이꾼들은 으레 그 시절을

얼굴이 비치는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몸이 푸석푸석 부어오르는 부황 기에 시달려야 했다.

모습만 사람이었지

먹고 사는 꼴은 짐승만도 못한 그런 삶은

자연의 이변이 만든 불가항력적인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건 4,000년을 헤아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봉건체제로 이어져온 사회의 인위적 구조였다.

봉건왕조가 와해되고,

식민시대가 종지부를 찍은 시점에서

그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는

기필코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절박한 필요성 앞에 주저나 망설임이 있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 혁명만이 그 유일한 길임을 신봉했고,

그 완성을 위해 줄기차게 뛰어왔던 것이다.

 

염상진은

숟가락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밥 속으로 깊이 찔러 넣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자.

투쟁을 하다 보면 죽마저 먹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때 이 밥은 더없는 성찬으로 그리워질 것이다.

염상진은 밥그릇을 내려다 보고 있다가

그릇이 사기로 되었음에 생각이 미쳤다.

무겁고 깨어지기 쉬웠다.

빠른 시간내에 그 것들을 나무로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조계산에는 매년겨울 숯을 구워내면서도

30 년이 걸려 1회전 할 만큼 참나무가 지천으로 덮여 있었다.

장기화될지도 모르는 투쟁을 위한 첫 번째의 준비작업이었다.

 

 

 

 

 

 

    6.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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