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쓰여지지 않은 나의 것들 [시인 류시화 님] 아직 쓰여지지 않은 나의 것들을 좋아한다 기억보다 오래된 산들을 좋아한다 희고 긴 다리로 자작나무 숲으로 달려가는 바람을 좋아한다 신의 손금 같은 허공의 잔가지들을 좋아한다 물속에서 얼굴을 부비는 두 개의 돌을 좋아한다 번개의 순수한 열정을 좋아한다 단 하나의 육체를 상속받은 개똥지빠귀를 좋아한다 겨울에만 태어나는 입김의 짧은 생애를 좋아한다 새벽빛보다 먼저 들판을 가로지르는 어린 동물을 좋아한다 밤새 생각이 낳은 알들 위로 내리는 싸락눈을 좋아한다 여러 개의 보조개로 웃는 감자를 좋아한다 호미에 속살이 드러난 고구마, 어렸을 때 치아 교정을 한 옥수수를 좋아한다 섬 뒤에서 사랑을 나누는 뭉게구름, 죽은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높새바람을 좋아한다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