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2014년에 다녀온 경산 팔공산 갓바위
몇 년 안 된 듯 한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
오랬만에 찾아 뵈어야 겠다.
대구광역시 동구 갓바위로 229
연락처: 053-983-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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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慶山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은 평생 1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1] 또한 갓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각종 시험 기도도 많이 한다.[2]
현재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3] 일명, 팔공산 갓바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의현이 어머니를 기리며 아미타불(또는 석가모니불)로 조성하였고, 고려시대에 8각 보관이 씌여져 미륵불이 되었다. 조선시대 이후로 팔공산이 약사여래신앙의 성지가 되면서 현재는 약사여래불이 되었다.[4]
또한, 팔공산 관봉 꼭대기에 위치하여서, 팔공산의 다른 봉우리와 달리 표지석(비석)이 없다. 팔공산 갓바위가 표지석 역학을 하기 때문이다.
[위치]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원래 불상이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이 아니었는데, 고려시대부터 '갓(冠)'을 쓴 불상이 유명해져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으로 바뀐 특이한 경우이다.
[석조여래좌상 제작자] 조각자
638년(선덕여왕 7년)에 신라의 승려인 의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하여 불상을 조각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밤이면 학들이 양식을 물고 날아와 허기와 추위를 달래주었다고 한다.
[석조여래좌상 제작 시기]
학계에서는 표현 방식으로 바탕으로 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 작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해인사의 사례로 보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당초 해인사 쌍둥이 비로자나불의 표현 양식이 조선시대라 하여, 조선시대 작품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미국까지 불상을 보내 조사한 결과 남북국시대(통일신라) 작품으로 밝혀졌다.
[석조여래좌상 특징]
팔공산의 봉우리에 있던 천연 암석을 깎아 들어가며 만든 불상이다.
후에 팔각형 연꽃무늬 관(冠)을 불상의 머리에 얹었으나 지금이 많이 훼손되어 '갓'처럼 보인다.
[대구 팔공산 석조여래좌상 신체적 특징]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어깨는 다소 올라가고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두 손은 투박하지만 정교하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대구 팔공산 석조여래좌상 검은 색깔!]
1990년대 초만 해도 부처의 몸에까지 촛불을 피우는 별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으름으로 지금보다 더 시커맸다.
또한 예전에 가뭄이 들면 사람들이 팔공산 관봉(갓바위) 부처에게 불을 질렀다. 부처가 쌔까매지면 용이 놀라 부처를 씻기 위해서 비를 내려주었다고 한다.[8]
이 두 가지 요인때문에 부처의 색깔이 군데군데 거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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