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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감정수업> 불행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나무 심고 책읽는...... 꿈은계속된다 2023. 7. 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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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감정수업

CHAPTER4 좌절, 희망을 꺾는 독약

 

===============20230710===============

 

4-4. 불행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P 148)

 하버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중국의 문학가 린위탕은 작품에서 "행운과 불행 사이에는 얇은 종이 한 장만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 종이를 행복이라고 여기면 행복이고, 불행이라고 여기면 불행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하버드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그가 불행을 대하는 태도다. 이상을 향해 가는 길 위는 늘 가시밭이며 주위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발에 피가 난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역시 외로움이다. 하지만 힘들고 외롭다고 그만두면 휘황찬란한 성공의 왕관을 쓸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위그 드 몽탈랑베르 Huguesde Montalembert는는 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그림에 소질을 보였으며,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위그는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혼자 세상을 떠돌며 화가와 연출자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1978년 어느 깊은 밤, 미국 뉴욕 위싱턴 광장 근처의 집에서 쉬던 위그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강도 두 명이 침입해 그를 공격하고 얼굴에 황산을 부어 두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엄청난 고통에서 깨어난 위그는 앞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크게 절망했다. 그가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과 끓어오르는 분노, 온통 암흑뿐인 세상을 마주하는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위그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었다. 시간이 흘러 찾아오는 친구도 줄어들고 이제 그가 만나는 세상은 크게 작아졌다. 외출조차 불가능했기에 하루 종일 홀로 빈 방에서 멍하니 지내야 했다.

두 눈을 잃은 예술가는 육체와 정신의 이중고를 겪으며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았다. '다치기 전에는 사방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하루 종일 글을 쓰느라 바빴지. 삶의 리듬이 어찌나 빠른지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못했어...

끔찍한 불행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반년이 흐른 후, 위그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그는 자신의 상황이 생각만금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아직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손으로 감촉을 느낄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나는 아직 크게 웃을 수 있어!' 이후 위그는 최선을 다해 살아서 햇빛 가득한 행복한 삶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불행을 완강히 거부하고 용기 있게 맞서는 과정은 일종의 재교육 현장'과 마찬가지였다. 눈을 대신할 손바닥과 손가락 끝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강의도 들었다.암벽 등반도 했다. 그는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으며 끊임없이 삶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애썼다. 차츰 주변 환경과 조건에 적응해 각 종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사라지고, 시각 대신 더욱 풍부해진 감각으로 대자연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불행은 잊히고 위그의 마음은 삶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해졌다.그의 삶은 늘 활기차고 힘이 넘쳤으며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한때 끔찍한 불행에 몸부림쳤던 위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의 빛을 잃은 건 두렵지 않습니다. 가장 두려운 일은 마음속의 등불이 꺼져서 다시 환해질 수 없는 거죠.

불행이 천재를 만드는 걸까. 아니면 천재가 불행을 따라가는 결까?

시인 존 밀턴 joh Mition은 실명했고, 음악가 베토벤 Ludwig van Bethoven은 청력을 잃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Nicolo Paganin는 실어증에 걸렸다. 설마 신이 천재와 불행을 하나로 짝지었던 걸까? 아무리 경험 많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들의 성공과 불행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약자에게는 불행이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연결된 계단이지만, 그들에게는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는 점이다.

불행이든 행운이든 한 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태도로 인생을 마주 할 것인가'는 곧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와 같은 의미다.

 

불행의 존재를 인정하라

 

세상에 고난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필연적으로 불행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행운과 불행이 끊임없이 연속되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불행을 어떻게 마주 하는가는 철학계의 오랜 화두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불행은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절망을 안겨준다. 더 무서운 일은 이후에도 불행이 수시로 발생할 수 있으며 고난은 우리의 삶 속에 항상 흐르는 반주곡이라는 사실이다.

 

담담하게, 더 의연하게

 

불행이 닥쳤는데도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하다. 당신을 둘러싼 잔혹한 세상이 무서운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살려면 반드시 강인한 마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에 유약하고 자아가 불완전한 사람은 작은 불행 하나에도 내면이 송두리째 흔들려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어!"라고 울부짖는다.이 같은 비탄과 무력함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담담하고 의연하게 불행에 대처해야 한다.

 

희망을 잃지 마라

 

불행을 마주하면 희망을 더 세게 붙잡아라. 강조컨대 희망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어쩌면 당장은 커다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은 자만이 절망의 순간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희망은 절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 자신을 완성해 가는 과정 중에만 만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다.

 

아름다운 미래를 믿어라

 

불행 속의 희망과 고난 중의 행복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머리 위에 커다란 불행이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태도다.

불행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행은 원망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불행을 마주했을 때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긍정적인 삶의 태도다. 그런 태도와 마음으로 불행을 바라보고 그 안에 숨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불행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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